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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클래식 파인만/ 리처드 파인만저, 랠프 레이턴엮음(2018)

콘텐츠 리뷰/영화, 책, 전시

by Bloomburger 2021. 3. 18.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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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를 떠올리면 일단 그들의 대단 업적에 감탄이 나오고 실로 나와 다른 부류의 인간인 것 같다는 경외심이 든다.(요즘 연예인중에 얼굴천재라고 불리는 친구들만 봐도 어떤 경외심인지 바로 와닿을 것이다.) 여러 분야의 천재 중에서도 특히 과학 분야의 천재라고 하면 왜인지 모르지만 천재 중에 천재라고 여기는 모종의 사회적 합의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과학이라는 분야가 접근하기 쉬운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그들의 발견은 인류의 역사를 좌지우지 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과학자 중에 천재를 따지자면 밤을 새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미국 과학계의 아이콘같은 사람이다. 노벨 물리학상 기본(?)이고, 물리학계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도 있겠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파인만이 가졌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원리를 이해하고자하는 순수한 열정과 집념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유감없이 발휘했던 그 지적인 소양은 비단 물리학자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적인 사고는 지금의 인류의 발전을 만들어낸 위대한 능력이었고 인간을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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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유명한 사진!

 

<클래식 파인만>을 읽다보니 경제학자의 역할에 대해 새삼 의문이 들었다. 경제학은 과학의 지위를 인정받고 싶어서 과학의 언어인 수학을 적극 받아들였고 이론적 부분은 수학으로, 통제된 실험이 불가능한 실증 부분은 통계학을 활용한다. 그 결과 사람들이 사회와 그들의 행동방식을 인지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린 대단한 모델을 만들고 통계적 추론을 한 학자들도 있지만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지위를 활용해서 아무 결론이나 지껄이고 있는 글도 많은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지위란 아무소리를 지껄여도 세상에 별 영향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클래식 파인만>에서 보듯이 물리학 법칙을 기반으로 기계를 만들어내는 공학자들은 아무소리를 지껄일 수 없다. 대충 설계한 실험으로 뽑아낸 데이터로 원하는 결론만을 이끌어낸다면 그 실험결과에 근거하여 우주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영영 되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인용]카고 컬트 과학中

이것은 일종의 과학적 통합성으로, 전적으로 정직함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 원칙이다. 즉 반대의 태도를 취함으로써 배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실험을 하고 있다면, 당신의 설명이 맞다고 생각되는 사실 뿐만 아니라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실도 모두 보고해야 한다. 실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원인, 다른 실험으로 인해 반박될 가능성 등을 모두 보고해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당신의 해석에서 의심이 가는 부분도, 알고 있다면 보고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틀렸거나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론을 만들었다면, 이것을 선전하거나 출판할 때 이론과 일치하는 것은 물론 일치하지 않는 사실들도 밝혀야 한다. 여기에 더 미묘한 문제가 있다. 여러 가지 사실을 통합해 만든 이론은 이론의 근거가 되는 현상을 잘 설명할 뿐만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을 바르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요약하면 모든 정보를 밝혀서 나의 기여를 심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편파적인 정보만 밝혀서는 안 된다.

(중략)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내가 설명한 과학적 통합성을 유지할 만큼 자유스러운 곳, 즉 조직체 내에서의 지위나 자금 지원, 또는 다른 어떤 문제 때문에 강제로 이러한 통합성을 잃게 되지 않는 곳에 속해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이런 자유를 누리기를 기원한다.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이 직접 쓴 글을 엮은 책이기 때문에 이 천재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그는 자주 "운이 좋았다."라는 말로 성공적으로 어떤 상황을 풀어간 스스로에 대해서 서술하며 곳곳에 여자를 너무나 좋아한 카사노바적인 면모도 볼 수 있다.(이 천재 카사노바는 여자들이 섹시한 의상을 입고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는 술집에 단골로 드나들면서 바에 앉아 탄산음료를 마시며 물리학 문제를 푸는 엄청난 사람이다.) 

물리학이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활약을 한 사람임에도 대중들에게 이렇게 유명한 아이콘인 이유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에피소드마다 전문적인 소재가 등장할 때가 왕왕있지만 파인만은 그 내용을 잘 압축하여 이야기에 녹아냄으로써 독자들은 그의 재치있는 글쓰기를 쉽게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에피소드는 <7퍼센트의 해답>이다. 여기서도 물리학적 소재가 등장하나 그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는 과학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바로 '전문가'라고 일컬어진 사람들의 말을 맹신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검증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 꽤나 두꺼운 이 책 속의 다양한 이야기 중 이 천재가 가장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졌던 에피소드이다.

 


 

[인용]파인만 찾기中, 앨런 앨다

나는 그의 성격 중에서 정직함을 가장 크게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결코 아무도 속이지 않았고, 특히 자신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모든 가정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물리학에 대해 보통 사람들에게 말할 때, 그는 결코 거장의 권위에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일상생활의 단어로 말하지 못하면,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의 이런 점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대부분이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았고, 그것을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치 단테가 그의 시대에 했던 것처럼, 그는 보통 사람들이 쓰는 언어로 가장 정교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천재였고, 미국의 많은 예술가들처럼 그는 직접적이고 격식을 차리지 않았으며, 평범한 것들을 살펴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평범한 것들의 비범한 뿌리를 들춰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가 나를 매혹시킨 이유는 다른데에 있었습니다. 프리먼 다이슨이 쓴 책을 읽던 나의 가슴에 와 닿은 파인만에 대한 구절이 있습니다. "파인만은 (...) 심대하게 독창적인 과학자였다. 그는 어떤 일에 대해서든 어떤 사람의 말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물리학의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재발명하거나 재발견했다는 뜻이다. (...)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는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공식적인 양자 역학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했다. (...) 마침내 그는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양자 역학을 만들어 낸 것이다."

(중략)

20년 전에 여기에 섰을 때 파인만은 과학자들에게 일반 대중에게 스스로의 연구가 가진 놀라운 응용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그런 응용이 없을 때도 그렇게 하는 것을 그는 경계했습니다. 어떤 연구에 돈을 대면 금방 그런 이득을 누릴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고 파인만은 생각했습니다. (...)

로버트 R. 윌슨은 여러 해 전에 여기에 대해 멋지게 저항했습니다. (...)

윌슨은 나중에 일리노이에서 피르미 연구소의 거대한 원자 분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이 일을 하기 전에 1969년의 국회에서, 상원 의원 존 패스터의 질문에 시달렸습니다. 상원 의원은 원자 분쇄기가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원자 분쇄기가 국가 안보에 어떤 기여를 합니까?" 윌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의원님. 저는 그것이 국가 안보에 기여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가?" 상원 의원이 되물었습니다.

윌슨은 상원 의원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면에 대해서만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문화에 대한 우리의 사랑 말입니다. 이것이 관련이 있는 것은 우리가 좋은 화가, 좋은 조각가, 위대한 시인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 나라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하는 모든 것들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를 지킬 만한 가치가 있게 하는 것과 관계가 있지만, 나라를 지키는 일 자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richard
취미였던 봉고와 함께 멋진 포오즈

 

클래식 파인만 - 10점
리처드 파인만 & 랠프 레이턴 지음, 김희봉 & 홍승우 옮김/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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